존엄사와 연명의료중단 입법화
-김문준 교수(건양대학교 기초교양교육대학)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경제 발전뿐만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조성해 가야 한다. 그런 일 가운데 하나가 평안하고 고통이 적은 노년기를 보내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 조성이 아닌가 생각된다. 죽음의 질을 높이는 일은 삶의 질을 높이는 문제와 별개의 일이 아니다.
이러한 때에 최근 환자의 의향을 고려한 ‘사전의료의향서’와 무의미한 ‘연명의료중단’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사전의료의향서란 뇌기능의 심각한 장애, 질병의 말기, 노령과 관련된 죽음 등과 같이 회복 불가능한 건강과 정신 상태에 처할 경우 자기 스스로 생명유지장치ㆍ인위적인 영양공급 등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의향서이다.
사회의 비인간화와 인간다운 삶에 대한 방치가 심화되면서 그에 따른 자살이나 비인간적 범죄의 증가도 문제이지만,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노년기 문제도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또한 병원내에서의 죽음의 급증하여 현재 90% 이상이 병원에서 사망하고 의료기술 발달로 죽음 연장이 만연하고 있는 마당에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도 문제되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무리한 생명 연장 치료에 의해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한 애처로운 죽음이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석달 전에 사망한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가 2013년 자서전에 "내가 움직이지 못하고 인공튜브로 연명하게 되면 의사들은 나를 떠나도록 허용해야 한다"라고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밝혔으며, 의료진이 이를 받아들여 그는 평온한 죽음을 맞았다. 삶과 죽음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이제 인간의 존엄성 차원에서 이러한 문제를 뒤로 미루어서는 안된다.
최근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산하 특별위원회에서 연명의료중단 입법화 문제를 거론하고 정치계가 참여하여 이를 논의하고 있다.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연명치료를 의료진이 아니라 환자의 자율적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사전의료의향서에 기초한 연명의료중단의 의미이다.
인간의 ‘존엄사’를 위해 ‘사전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중단’은 우선 환영할 일이다. 고령화 사회가 심화될수록 가족의 돌봄이 아니라 각종 의료 장비에 둘러쌓여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 노인이 늘고 있는 이때에 사전의료의향서 작성 운동과 연명의료중단 입법화는 인간의 존엄성 유지 면에서 시의적절한 논의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마련이 우선이라고 생각된다. 사전의료의향서 확산과 연명의료 중단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근본적이고 본질적 의미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에 의한 연명의료중단 결정은 환자 자신의 자아존중감에 의한 자율적 선택에 의해야 한다. 환자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에 의한 순수한 자기결정권에 의해야 하지, 가족이나 국가의 입장에서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현재 논의하는 연명의료중단 결정은 환자의 고통과 존엄성 측면 보다는 복지기금 운용을 위한 효율성과 경제성에 기초해 있지 않나 생각된다. 인간의 생명은 효율성과 경제성의 차원으로 환원될 수 있는 사안이 되어서는 안된다. 죽음을 이렇게 다루면 점차 건강하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관점도 인간적인 삶의 존엄성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효율성과 경제성으로 대체되어 갈 가능성이 크다. 사전의료의향서 작성 운동과 연명의료중단 결정 문제는 우선 국가가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 가는 가운데 논의되어야 할 문제이다.
건양대학교 웰다잉 연구원 김문준 교수의 2015.8.11 중앙매일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