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프랑스인들의 삶과 죽음 - 건양대학교 기초교양교육대학 박아르마 교수
최고관리자2022-10-18

프랑스인들의 삶과 죽음

-박아르마 교수(건양대학교 기초교양교육대학)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이면서도 삶이 지속되는 시간 동안에는 잊고 있거나 미래의 사건으로 유보시키고 싶은 두려운 경험이다. 건양대학교에 재직 중이면서 평소 가깝게 지내던 몇몇 교수들은 우연한 기회에 죽음의 문제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하게 되었다. 토론의 결과, 우리사회에서 아직까지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이 부족했고 죽음을 학문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마침 한국연구재단에서 연구 공모가 있어 연구팀은 ‘학제간융합연구지원사업’의 ‘새싹형 연구’에 도전하여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사업에 선정되었다. 선정된 연구의 주제는 ‘한국인의 사회적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의료인문학 기반 완성적 죽음교육프로그램 개발’이었다. 연구의 목적은 인문·사회와 보건·의료 영역의 연구자들이 주축이 되어 죽음 관련 교육, 인력양성, 교육체계 및 사회 시스템 구축 등 국가적 단위의 죽음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1차년도 연구를 정리하면서 죽음에 대한 연구와 사회적 공론화에 있어 우리보다 경험이 앞선 프랑스를 방문하였다. 프랑스 방문의 주요 목적은 우리 대학의 ‘웰다잉 융합연구 교육센터’와 학술적 교류를 위해 협약을 진행 중인 ‘프랑스 죽음준비 국가 연맹(JALMALV)’의 운영 실태를 파악하고 각자의 연구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학술 교류를 통해 우리가 파악한 프랑스의 죽음교육은 죽음 자체에 대한 연구에 머물지 않고 죽음을 앞둔 사람과 남겨진 사람에 대한 정신적 치료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국립 투르대학이나 ‘프랑스 죽음준비 국가연맹’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는 ‘대체의학’이나 ‘보완의학’이라는 이름으로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에 대해 인문학에 기반을 둔 예술치료를 병행하고 있었다. 예술치료에는 사이코 드라마와 같은 전통적인 연극치료, 글쓰기·독서치료, 음악·미술치료가 있다. 우리의 경우도 이와 같은 예술치료를 환자치료에 적용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의료영역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연구팀은 죽음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프랑스의 장묘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대도시의 경우 프랑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묘지 부지 부족이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 시내에는 페르라셰즈, 몽마르트, 몽파르나스 등 3개의 공동묘지가 있다. 우리와 다른 점은 대형 공동묘지가 시내 한복판에 있고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어 연고가 없는 사람도 산책을 위해 찾는다는 것이다. 몽파르나스 묘지의 경우 철학자 샤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가 나란히 누워 있고 작가 에밀 졸라, 작곡가 오펜바흐도 묻혀 있다. 우리가 방문한 페르라셰즈 묘지는 파리에서 가장 큰 규모로 200여 년 전에 조성되었다. 이곳에 묻혀 있는 유명인들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데 쇼팽, 발자크, 이브 몽탕, 이사도라 던컨, 짐 모리슨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런 세계적인 인물들이 안장되어 있다 보니 페르라셰즈 공동묘지는 혐오시설과는 거리가 멀고 여러 사람들이 방문하는 세계적인 명소이자 죽어서 가고 싶은 장소가 되었다.

 화장률이 20% 안팎이라는 프랑스의 넘쳐나는 묘지 부지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해졌다. 프랑스인들은 화장보다는 매장을 선호하지만 넓은 면적의 묘를 쓰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공동묘지에 묻힌다. 또한 분양 묘지의 면적은 2제곱미터 정도이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가족묘지가 많다. 분양 분묘도 영구 매장보다는 10년에서 50년 사이에 시한부 매장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도 국가지도자급 인사들부터 작은 분묘 이용을 실천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방문지는 팡테옹이었다. 팡테옹은 루이 15세 때 성당으로 지은 건축물이지만 지금은 프랑스의 위인들이 안치되어 있는 우리로 치면 국립묘지에 해당한다. 돔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의 지하에는 철학자 루소와 볼테르부터 빅토르 위고, 앙드레 말로와 같은 작가, 과학자 퀴리 부인까지 프랑스를 대표하는 위인들의 묘가 있다. 연구팀이 이곳을 방문하여 감동을 받았던 이유는 최근 안장식이 거행된 4명의 프랑스인 관련 전시회를 보고나서였다. 최근 안치된 남성 2명과 여성 2명은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 점령당한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가 죽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국가가 나라를 위해 죽은 사람을 어떻게 예우하는지 알면 그 나라의 인권과 복지 수준까지도 알게 된다. 연구팀의 핵심 과제인 웰다잉, 즉 죽음준비교육도 결국 삶을 사랑하고 살아가는 동안 어떤 삶을 살아갈지 준비하는 것이 목표가 돼야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건양대학교 웰다잉 연구원 박아르마 교수의 2015.11.5 대전일보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