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시대의 비극
- 김문준 교수(건양대학교 기초교양교육대학)
장수는 인간의 오복 중의 하나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부모가 오래 사는 것을 축하하는 잔치도 많아서 회갑연, 고희연, 산수연, 희수연 등 나이에 따른 장수 잔치도 많이 발달해 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빠르게 수명이 늘어나고 노년기가 길어지면서 장수가 복된 일만은 아닌 일이 되고 있다.
이제 노년기가 길어졌다. 과거에 60세를 넘는 이들이 드문 가운데 환갑을 크게 축하하던 시대가 아니라 이제는 환갑이 되어도 장년처럼 건강하고 경로당에서도 젊은이로 취급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준비 없이 노년기를 맞이하게 되면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과거의 노인들은 전통 사회의 대가족제 사회에서 많은 가족들로 둘러쌓인 가운데 존중받으며 신체적 육체적 안정 속에서 살아갔다. 그러나 오늘날 그러한 노년기를 보내는 노인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경제 선진국 일수록 과거에는 생각지 못했던 많은 노년기의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으며, 그러한 이유를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물론 많은 국가의 노인들이 노인의 빈곤, 노인의 질병, 노인의 고독, 노인의 영향력 약화 등 악조건 속에서 행복한 인생과는 거리가 먼 노년기를 보낸다.
오늘날 노인들은 점차 노년기가 길어지고 있다. 그러면서 가난한 상태로 오랜 기간을 살아 가는 노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많은 노인의 경우 본인 자신은 물론 가족과 국가의 대비책이 별로 없다. 그리고 오늘날 노인들은 대단히 건강해 졌다. 그러나 건강하게 지내는 연령대가 연장된 것 뿐이다. 결국 나이가 많이 들면 쇠약한 상태가 찾아온다. 일반적으로 질병이나 노환 치료가 생명을 연장시키는 긍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불편한 노년기를 연장시키고 고통스러운 투병 기간과 죽음을 맞는 과정이 길어지는 부정적인 측면도 주목할 사실이다.
무엇보다 요즘 사회는 젊은이들의 공간과 늙은이들의 공간이 분리되어 가고 있다. 가족은 점차 핵가족화하고 있다. 노년기가 길어지자 노인들이 봉착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문제는 배우자, 친구, 친지들이 사망하고 남겨진 자들의 슬픔은 증폭된다.
이러한 가운데 노인들의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과거 농업사회에서는 노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활의 지혜가 소중한 자산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오히려 노인 자신이 젊은이들에게 생각이나 생활 방식을 맞추어 나가지 못하면 가정과 사회의 천덕꾸러기가 된다.
이러한 상태이므로 개인 노력만으로는 불행한 노년기를 해결하기 어려우며 국가적으로 노인을 위한 사회안전망과 서비스 체제를 더욱 치밀하게 짜야 하고, 노인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경제 선진국이 될 수록 나날이 길어지고 있는 노년기와 그래도 누구든 결국은 맞이해야 할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우리나라는 너무도 급격히 증가하는 노년기에 대해 개인도 국가도 제대로 적절한 대비를 못하고 장수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장수는 축하할 복이지만, 자칫 상황에 따라 재앙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이러한 분야의 복지 프로그램과 일자리를 창출해 가야한다. 우선 누구든, 어느 나라든 벗어날 수 없는 이러한 불가피한 난제에 대해 노인 복지국가들은 어떠한 대비를 하고 있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 년간 학술재단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는 죽음학과 관련하여 노인 복지국가인 미국(웰다잉융합연구팀 책임교수 김광환외 2명)과 캐나다(김문준교수)의 노년기 생활과 서비스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방문했다.
건양대학교 웰다잉 연구원 김문준 교수의 2016.8.23 중앙매일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