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칼럼] 죽은 자를 존중하는 사회 - 건양대학교 기초교양교육대학 김문준 교수
최고관리자2022-10-18
죽은 자를 존중하는 사회

- 김문준 교수(건양대학교 기초교양교육대학)

미국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율이 연일 떨어지고 있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참전군인 유족과의 논쟁이 지지율 하락의 큰 원인이 되었다. 이라크전에서 전사 한 칸 대위의 부모가 민주당 전당 대회의지지 연사로 나서 ‘국가를 위한 희생’의 의미를 묻자 트럼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칸 대위의 어머니를 두고 엉뚱하게도 ‘공공장소에서 발언이 허락되지 않는’ 이슬람의 여성차별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트럼프의 이런 발언이 알려지자 그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영웅의 부모를 비하했다는 비난을 받았음은 물론 공화당 당원들의 지지 철회도 이어졌다. 나는 이 사건을 두고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먼저 국가를 위해 죽은 자는 물론 그의 부모에 대해서도 성역까지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예우를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미국 국민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죽은 자를 예우하고 존중하는 사회는 살아 있는 사람의 인권과 권리에 대해서도 존중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우리 대학에서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죽음’에 대한 연구와 ‘죽음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3+2년 사업을 진행 중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국회에서 웰다잉법(존엄사법)이 통과된 것을 계기로 죽음에 대한 토론이 활성화되고 죽음에 연구와 교육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우리 사회의 죽음교육은 아직 논의가 시작된 단계이고 학문적 차원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로 죽음을 가까운 사람에게, 그것도 가족에게 꺼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 연구팀은 죽음을 수용하는 데 있어서의 선진국의 경험을 배울 필요성을 느꼈다. 미국에서는 이미 ‘1970년대 말에 600개 이상의 죽음 관련 강좌’가 열렸고 지금도 각 대학에서 ‘죽음학’ 강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니 말이다.

연구팀은 지난 7월 연구 협약과 자료수집, 죽음 관련 기관 방문을 위해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를 찾았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미국의 수도이고 뉴스의 중심에 있는 곳이다 보니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는 도시이기도 했지만 우리가 방문한 곳들을 돌이켜 보니 워싱턴은 죽은 자들을 기념하기 위한 도시라는 생각이 새삼 들기도 했다. 도시 한복판에 있는 워싱턴 기념탑부터 링컨, 제퍼슨 기념관, 홀로코스트 박물관,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 알링턴 국립묘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념물들이 죽은 자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시설이었으니 말이다. 워싱턴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유사한 행정수도인 세종시 중심에 국립묘지와 죽은 사람들을 기념하기 위한 시설들이 자리 잡고 있는 풍경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알링턴 국립묘지에는 남북전쟁, 세계대전, 베트남, 한국전, 걸프전 전사자들부터 무명용사의 묘에 이르기까지 ‘기억해야 할 수많은 죽음’들이 묻혀 있다.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은 메모리얼 데이를 맞아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아 헌화하고, “나라를 위해 순국한 사람들에게 진 빚은 완전히 갚을 수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최근 미국 하원의원들이 한국전쟁 때 전사한 미국의 유해 발굴을 위해 미국 정부가 북한과 협의를 재개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했다는 뉴스 역시 죽은 자들을 존중하고 예우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말해준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죽은 사람을 위해 많은 비용을 들여 묘지를 운영하고 죽은 지 60년이 지난 사람의 유해를 기억하고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들이 어쩌면 ‘비효율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트럼프의 전사자 유가족에 대한 비하 발언도 전사자에 대한 직접적인 모욕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죽음을 기억하지 않고 죽음의 의미를 묻지 않으며 죽은 자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가 살아 있는 사람의 생명이라고 해서 특별히 보호하고 지키는 데 힘쓸 것 같지는 않다. 한 사회가 죽은 사람에 대해 예우하고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오히려 살아 있는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 사회에도 기억해야 할 죽음이 많이 있다. 2001년 일본 지하철에서 일본인을 구하려다 죽은 고(故) 이수현 씨를 비롯해서 2014년 300여 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고인들의 죽음을 우리가 기억하고 추모하는 방식을 보면 우리 사회의 인권 의식과 수준도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건양대학교 웰다잉 연구원 김문준 교수의 2016.8.29 중앙매일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