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칼럼] 죽음을 공론화하는 사회 - 건양대학교 기초교양교육대학 김문준 교수
최고관리자2022-10-18
죽음을 공론화하는 사회


- 김문준 교수(건양대학교 기초교양교육대학)

건양대학교 웰다잉 융합 연구팀은 미국의 죽음교육 현황을 파악하고 관련 교육기관 방문과 자료 수집을 위해 뉴욕으로 출국했다. 연구와 출장 목적의 출국이었지만 경제는 물론 현대 미술과 음악, 공연 등 예술의 중심지이고 유행을 선도하는 대도시이다 보니 여행자의 설렘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만큼 뉴욕은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고 거의 모든 것에 관한 경험이 가능한 곳이었다. 뉴욕 체료 일정 동안 우선적으로 방문하고자 했던 곳은 인근의 뉴저지 소재 (죽음으로 인한) 비탄 치유 센터 ‘Center for grief services'와 홀로코스트 박물관이었다. 또한 지난해 암으로 생을 마치면서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기록해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준 미국의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 박사와 관련된 장소와 기록을 찾아보려는 목적도 있었다.

‘비탄 치유 센터’의 설립 목적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죽은 뒤 찾아오는 상실감과 슬픔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데 있고 센터는 그와 관련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 연구팀의 주요 과제 역시 죽음교육프로그램 개발이고 프로그램에는 가족이나 지인의 죽음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의 상실감 치유와 일상생활 복귀를 위한 내용도 있다. 특히 이 기관의 운영자인 노마 보위 박사는 킨 대학에서 10년 이상 죽음학 강의를 진행하여 수많은 학생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녀의 죽음학 강의는 에리카 하야사키의 저서 ‘죽음학 수업’을 통해서도 국내에 소개되었다. 노마 박사의 죽음학 교실은 이론에 머물지 않고 사고로 죽은 시신을 검사관이 부검하는 장면을 학생들에게 직접 보게 한다든지 묘지와 장례식장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야말로 죽음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죽음을 목격하고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살아 있는 수업이 진행되었다. 노마 박사는 오랜 죽음학 강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비탄 치유 센터’를 운영하며 죽음의 트라우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상처받은 사람에게 삶의 희망을 되찾게 해주는 사명을 다하고 있다.

우리가 인구 흑색종이라는 희귀 암으로 타계한 올리버 색스 박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죽음학 연구를 진행하면서 그가 뉴욕 타임즈에 쓴 ‘나의 인생 My Own Life'에 대해 읽고 나서였다. 그는 이 글에서 죽음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자신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감사한 마음을 기록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나는 살아있음을 강렬하게 느낀다 그 시간에 우정을 깊게 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하고, 더 많이 쓰고, 힘이 닿는다면 여행도 하고…” 이렇게 남아 있는 삶을 희망을 잃지 않은 채 기록한다. 우리 연구팀이 운영 중인 죽음교육프로그램에도 ’앞으로 주어진 시간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엔딩노트‘와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과정이 있다. 올리버 색스 박사가 족음 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그가 의사이기에 앞서 젊은 시절부터 오토바이로 미국 전역을 돌아다닐 정도의 여행을 즐겼고 평생 쓴 일기가 1000여권에 달할 정도로 ’쓰기‘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짧은 뉴욕 일정 동안 미국인의 죽음에 대한 태도와 죽음교육 현황을 상세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우리 연구팀이 깨달은 것은 죽음은 피하거나 두려워하기 보다는 죽음에 대해 이해하고 토론하며 공론화할 때 그 공포도 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우리 연구팀이 학생들과 성인 대상의 죽음교육 이후에 행한 죽음에 대한 태도를 분석한 논문에서도 이미 확인 된 사실이었다. 노마 박사의 죽음학 강의의 핵심 내용도 죽음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죽음에 맞서게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색스 박사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삶에 대한 애정과 지난 시간을 기록하는 습관은 죽음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 올해 초 ‘웰다잉법’ (존엄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죽음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죽음에 대한 논의의 목적은 음습하고 절망스러운 삶의 끝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오히려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살아있는 동안 삶의 희망을 잃지 말자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건양대학교 웰다잉 연구원 김문준 교수의 2016.8.31 중앙매일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