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칼럼]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사회 - 건양대 기초교양교육대학 김문준 교수
최고관리자2022-10-18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사회



- 김문준 교수(건양대학교 기초교양교육대학)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남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다가올 죽음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다르지 않다. 건양대학교 웰다잉 융합연구팀은 우리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생산적인 토론이 활성화되고 그것이 생명에 대한 사랑과 존중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목적에서 지난 3년간 죽음에 대한 연구와 교육을 병행해왔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는 프랑스와 미국, 캐나다를 방문하여 선진국의 죽음교육의 현황을 파악하고 죽음과 관련된 문화와 태도를 이해하여 우리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교육 모델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어 연구를 진행했다.

먼저 연구팀이 파악한 선진국의 죽음교육은 적어도 대중교육에 있어서는 죽음의 ‘인지적 측면’ 보다는 ‘실천 및 행동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말하자면 죽음을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장례와 관련된 체험, 묘지 방문, 호스피스 병동 방문, 엔딩 노트와 묘비명 쓰기 등의 실천적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에 죽음교육이 도입된 지 오래되지 않아 아직까지는 인지적 교육이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점차 현장 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선진국의 죽음교육은 죽음 자체에 대한 교육을 넘어 가까운 사람의 죽음 이후에 나타나는 남은 사람들의 슬픔과 비탄, 트라우마 치유도 교육의 범위에 포함시키고 있다. 프랑스와 미국의 경우 전쟁이 아니더라도 테러와 총기난사 사건이 빈발하고 개인뿐 아니라 국민 전체가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겪는 일이 빈번하다 보니 ‘남은 사람’에 대한 죽음교육도 중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연구팀이 선진국의 죽음과 관련된 태도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주목한 것은 장례와 묘지였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어떻게 떠나보내고 어떤 관계를 유지하는지 알게 되면 그 사회의 죽음과 관련된 태도와 문화 전반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비롯된 판단이었다. 프랑스의 경우 파리 시내 한복판에 몽마르트, 페르라셰즈, 몽파르나스 등의 묘지가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경우 도시 전체가 죽은 자들을 위한 기념물일 정도로 ‘죽음과 기억’ 관련 장소와 시설이 많았다. 뉴욕의 경우도 그린 우드 묘지를 비롯해 도시 중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공동묘지들이 조성되어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선진국의 묘지는 도심에 있거나 적어도 도심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생활공간과 크게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일반인들이 주로 매장되는 공동묘지에 쇼팽, 에디트 피아프, 번스타인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과 명사들이 함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시내 한복판에 현충원 말고 큰 묘지가 있다거나 명사들이 공동묘지에 일반인들과 함께 묻히는 경우를 잘 듣지 못 했다. 우리에게 아직까지 묘지는 기피시설이고 살아있을 때의 사회적 지위는 죽어서도 유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여전한 것 같아 씁쓸한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리는 도심 한복판에 묘지가 있는 프랑스와 미국의 사례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사회는 죽음을 공포와 터부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여긴다는 가치관을 읽을 수 있었다. 따라서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사회에서는 죽음에 대한 토론과 교육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으며 묘지까지도 생활의 공간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죽음의 문제가 현실의 사건이자 나의 문제가 되는 것은 가까운 사람, 그것도 가족의 죽음을 겪게 되면서부터 일 것이다. 특히 가족 중 한 사람을 불의의 사고로 잃거나 회복 불가능한 질병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을 두게 되면 그 상처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죽음은 예고하고 찾아오지 않는다. 죽음교육은 삶의 희망을 꺾거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려는 음습하고 두려운 경험이 아니다. 죽음교육을 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이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것이 우리 연구팀이 선진국의 경험과 지난 3년 동안의 연구에서 얻은 결론이다.








건양대학교 웰다잉 연구원 김문준 교수의 2016.9.1 중앙매일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