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칼럼] 죽음이 주는 두려움
최고관리자2022-10-18
죽음이 주는 두려움

‘지혜로운 삶을 위한 웰다잉’ 에서



 
필자가 10여 년 지속해 온 모임에서 나이가 가장 적은 멤버의 배우자가 지난 가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오며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것이 죽음의 특성이라고 하더라도, 평균 보다 한참 이른 나이에 갑작스레 찾아온 죽음은 아쉽고 가슴 시리고 힘겹다.

특히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회복 불가능한 질병을 앓고 있고 삶의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때, 죽음에 대한 공포는 더 커지기 마련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단일한 요인이 아니라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되며 육체적, 정신적 측면 모두와 관련이 있다.

인간이 지닌 불행의 가장 근원적인 밑바탕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죽음이 닥쳐올 것에 대한 불안이 있다.

또한 물리의 법칙과 변화의 원칙을 이해할 때 공포심이 완화되고 죽음을 인생의 한 과정 순리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제프 그린버그(Jeff Greenber, 아리조나 대학교 심리학과)는 “인간이 지닌 죽음의 두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문화가 발전해 왔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문화를 통해 죽은 뒤에도 자신이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음을 믿는다. 인간은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망을 담아 자신들만의 문화를 발전시켰고, 죽음의 두려움을 덜기 위해 문명을 발달시켰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죽음은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어떤 시각에서 죽음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을 의욕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끔찍하고 두렵고 절망만이 가득하게 보이게도 한다. ‘좋은 죽음’을 추구할 때 우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덜고,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은 늙지 않고 영원히 사는 삶을 욕망한다. 그러나 불멸은 인간의 바람일 뿐이다.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 그러므로 우리도 분명히 죽을 것이다. 그럼에도 죽음을 벗어나고 싶은 인간은 영생을 꿈꾼다.

첨단의료의 발달로 인한 생명유지 장치는 불멸을 욕망하는 인간의 발명품 중 하나다.

그러나 불멸이라는 인간의 발명품은 아직은 노화라는 암초에 걸려 원치 않는 재앙을 내리는 수준의 것이다.

몽테뉴는 “노년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 고통과 괴로움에 종지부를 찍어주는 죽음은 축복”이라고 했다.

인간이 바라는 영생의 소망은 사는 동안 건강하고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이다.

생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단지 ‘슬픈/우울한 느낌’의 경험뿐이라면 결코 영생이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인간에게 가장 강한 본능은 생존본능이다.

생의 반대편에 있는 죽음은 자연적으로 가장 두려운 대상이다.

죽음의 공포는 죽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려는 마음가짐으로부터 발생한다.

인간은 이성이 발달해 다른 동물과 달리 자신과 미래를 알고 있으며, 미래의 죽음에 대해서 사유하거나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동물보다 죽음의 공포에 더 취약하다.

인간은 이성을 얻는 대가로 현재하지 않는 죽음을 미리 걱정하는 실미적 불리함을 지녔지만, 그 반대로 본능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도 지니고 있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성욕. 수면욕, 식욕을 가지고 있다.

이들 욕구는 모두 생존본능의 하위 욕구들로 인간은 훈련(수련)에 의해 그러한 욕구를 통제할 수 있다.

따라서 죽음이 주는 두려움도 통제할 수 있다!










건양대학교 웰다잉융합연구팀의 2017.2.8 중앙매일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