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에 외조부로부터 일본 사회에는 고독사(孤獨死)가 만연하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때는 사람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서 혹은 혼자 살다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말의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우리 사회에서도 혼자 살다가 죽거나 죽은 뒤 몇 달이 지나서 발견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보니 고독사는 더 이상 기삿거리가 되지 않고 있다.
건양대학교 웰다잉 융합연구소(소장, 병원경영학과 김광환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논의가 아직 활발하지 않던 시기인 2014년에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웰다잉’이라는 죽음의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죽음 준비교육에 이르기까지 연구와 교육, 저술 사업을 활발하게 펼쳤다.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죽음에 대한 언급 자체를 터부시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건강할 때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기로 하는 결정인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면 웰다잉 연구소가 우리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논의를 촉발하는 데 일정하게 기여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웰다잉 융합연구소는 죽음에 대한 연구는 물론 전 생애에 걸친 성공적인 노화를 목적으로 하는 ‘웰에이징’으로 연구의 범위를 넓혔다. 초고령화 사회를 목전에 두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고령화 사회가 재앙이 아닌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 필요이기 때문이다. 연구소는 웰에이징 문화사업의 발전과 확산을 위해 우리보다 고령화 시대를 미리 겪은 일본의 경험을 듣고자 연초에 도쿄 복지대학을 찾았다. 일본 전체 인구에서 80대 이상이 10%이고, 65세 이상의 고령자 비율이 30%에 육박하다 보니 우리보다 고령화 사회에 먼저 진입한 그들의 경험을 듣고 싶었다.
도쿄시에 소재한 도쿄복지대학은 대학명과 마찬가지로 사회복지학부가 중심이며 심리학부와 교육학부 등으로 편성되어 있다. 특히 사회복지학부는 사회복지와 개호복지, 정신보건복지, 심리와 경영복지로 학부가 구성되어 있다. 건양대 연구팀을 안내한 사노 아유미 교수에 따르면 사회복지를 전공자는 이론부터 실습까지 현장 중심으로 학습하여 관련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정신장애가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전문화된 교육과 자격증 취득이 가능하고 복지시설 경영과 운영을 위한 특화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낯선 용어인 ‘곁에서 돌본다’라는 뜻의 개호(介護) 서비스는 전문인력이 환자의 가정을 방문하여 요양보호, 간호, 목욕, 재활치료 등의 활동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시설 중심의 돌봄 체계가 일본처럼 방문 돌봄으로 다원화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침 도쿄 복지대학 사회복지 학부에 한국인 김정임 교수가 재직하고 있어 일본의 사회복지 정책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토론이 가능했다(2025.1.14.). 김 교수는 정부 지원을 받아 6년 프로젝트로 ‘가족 부양자’ 대상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일본 사람들도 죽음에 대한 언급을 꺼리고 노인 대상 가족 간 돌봄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며 상속에 따른 다툼도 있다는 사실을 듣고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고령자 중 치매 환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여성의 발병률이 남성보다 높고, 구급차 이용률이 일반 성인보다 고령자가 월등하게 높다고 한다. 이러한 고령자 돌봄 문제에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제시한 방법이 ACP(advance care planning)이다. 김 교수는 “종말기 고령자의 70%는 의사소통이 불가능 하기 때문에 의료와 돌봄이 결합한 ACP 도입이 필수적이며 이를 통해 환자가 겪는 정신적, 육체적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번 도쿄 복지대학 방문을 통해 70대가 90대 노인을 돌본다는 일본 초고령화 사회의 현실을 확인하고 우리에게 다가올 초고령화 사회에서 나타날 문제점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을 느꼈다.
연구소장 김광환 교수는 도쿄 복지대학과의 교류를 통해 “전 생애에 걸쳐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웰다잉과 건강하고 행복한 노화를 돕는 웰에이징 연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출처 : http://www.knpp.co.kr/news/326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