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웰다잉은 삶의 과정에서 만들어 가는 것 - 건양대 호텔관광학과 송현동 교수
웰다잉은 삶의 과정에서 만들어 가는 것
-송현동 교수(건양대학교 글로벌호텔관광학과)
최근 한국사회에서 웰다잉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지난해 조선일보는 총 10회에 걸쳐 “한국인의 마지막 10년” 기획기사를 통해 한국인들이 맞이하고 있는 죽음의 질과 의료체계의 현실, 임종에 이르기까지의 의료비용, 명백한 죽음이 예상되는 환자들을 진료해야 하는 의사들이 처한 상황들에 대해 자세히 다루었다. EBS 방송은 웰다잉에 대한 기획방송과 전문가와의 대담 프로그램을 통해 웰다잉을 의학, 심리학, 철학, 종교학 등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입체적으로 죽음의 문제를 다루었다. 무엇보다 의사들이 환자들의 건강한 삶의 문제가 아닌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의도하지 않은 존엄사와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국가 차원에서 이에 대한 기준마련을 고민해야만 하는 상황을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흐름은 기존의 웰다잉에 대한 논의가 주로 인문학분야에서 진행되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한국사회에서 웰다잉에 대한 논의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먼저 병원에서 임종을 맞지 말 것, 노후 재산관리를 잘 할 것, 사전 의료의향서 작성,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 엔딩노트 작성, 죽음에 이르는 기간이 짧을 것, 사전 장례방식의 결정, 무의미한 연명치료중단 등이다. 또한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웰빙의 측면에서 웰다잉으로 간주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웰다잉에 대한 논의가 사람들에게 좋은 죽음을 맞기 위한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데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웰다잉 논의는 한국인의 죽음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고려한 웰다잉에 대한 논의라기보다는 주로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한 인간의 삶과 죽음,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성찰하기보다는 죽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매뉴얼 개발에 치중되어 있다. 개개인 스스로가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차원에서 평소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웰다잉의 조건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제시된 프로그램의 수용과 요건 충족이 웰다잉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확산은 웰다잉 논의를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한국죽음학회는 임종자가 존엄하게 생을 마치고, 가족이나 의료진은 임종자가 편안하게 마지막 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안내해주자는 취지에서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을 발간했다.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한 가지 의문이 제기 된다. 책을 발간한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웰다잉도 가이드라인이 있을 수 있을까? 웰다잉을 위해서 매뉴얼이 만들어지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과거 국가가 가정의례준칙을 정하고 지침을 내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개인의 죽음 선택권과 자율성은 보장되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웰다잉은 용어에 대한 개념 정의가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사건이지만 그곳에는 죽음의 원인, 죽음을 맞는 연령, 죽음의 장소 등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또한 죽어가는 사람의 성별, 결혼 여부, 자손, 가족 관계, 경제적 상황 등 개인적인 요소들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는 당사자가 생각하는 웰다잉과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는 웰다잉은 서로 일치할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전통사회에서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좋은 죽음의 조건은 첫째, 결혼을 해서 제사를 지내줄 후손이 있어야하고 둘째, 비명횡사 요절하지 않으며 셋째, 객사가 아니라 집에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임종을 맞는 것이었다. 이러한 좋은 죽음의 조건은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단기간에 조성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진행되는 삶의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웰다잉에 대한 논의의 목적은 보다 나은 삶을 살기위해서이다. 디켄 교수는 죽음에 대한 준비교육은 자신이 죽는 날까지 매일 매일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삶에 대한 준비교육이며 삶과 죽음의 근원을 찾아 가는 여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웰다잉 논의가 죽음을 처리하기 위한 좋은 조건 만들기와 웰다잉 가이드라인 및 매뉴얼 개발에 치중했다면, 앞으로는 삶의 차원에서의 죽음, 웰다잉에 대한 관심과 탐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건양대학교 웰다잉 연구원 송현동 교수의 2015.8.6 중앙매일 칼럼입니다.
202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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